지은이 : 페르난두 페소아지음
- 역자: 배수아옮김역자평점 7.5
- 출판사 : 봄날의책| 2014.05.15
읽은날짜 : 2015.01.29~
글쓰기는 기쁨을 주는 행위라기보다는 독성을 알면서도 빠져나오지 못하는 마약과 같다. "나에게 글쓰기는 자기 경멸이다. 하지만 나는 글쓰기를 놓지 않는다. 나에게 글쓰기는 혐오하면서도 끊을 수 없는 마약과 같다. 경멸하면서도 발을 빼지 못하는 악덕과 같다." 그럼에도 작가는 글을 쓴다. "삶이 우리에게 감옥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닐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장식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비록 가진 것이 꿈의 그림자일 뿐일지라도, 그것으로 색색의 그림을 그리며, 고요히 서 있는 담장의 외면에 우리의 망각을 새겨넣으면서."
혼자만의 대화에 빠져 있던 도중에 순간적으로 타인과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강한 욕망을 느끼면,
바로 지금처럼, 나는 지붕들 위에 폭포처럼 쏟아지는 빛을 향해 말을 건다.
소리 없는 산사태로 무너질 듯하여 더욱 가까이 보이는 도시의 비탈 위, 부드럽게 휘어진 모양으로 서 있는
높다란 나무들에게 말을 건다.
급격하게 경사를 이루며, 플랜카드처럼 겹겹이 서있는 집들에게 말을 건다.
하나하나의 창문은 플래카드의 철자와 같다.
나는 달아나고 싶다. 내가 아는 것으로부터, 내 것으로부터, 내가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달아나고 싶다.
나는 홀연히 떠나고 싶다.
불가능한 인도나 모든 것이 기다리는 남쪽의 섬나라가 아니라,
어딘가 알려지지 않은 곳, 작은 마을이나 외딴 장소, 지금 여기와는 아주 다른 곳으로.
나는 이곳의 얼굴들을, 이곳의 일상과 나날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나는 낯선 이방인이 되어 내 피와 살 속에 뒤섞인 위선 벗어나 쉬고 싶다.
휴식이 아니라 생명으로서 잠이 나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싶다.
바닷가의 작은 오두막, 아니 험난한 산비탈 벼랑의 동굴이라 할지라도 내 이런 소망을 채우기에는 충분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내 의지는 그렇지 못하다.
불안의 서 발문 - 김소연 -
"열정이 배제된, 고도로 다듬어진 삶을 살기. 이상의 전원에서 책을 읽고 몽상에 잠기며, 그리고 글쓰기를 생각하며.
권태에 근접할 정도로, 그 토록 느린 삶.
하지만 정말로 권태로워지지는 않도록 충분히 숙고된 삶.
생각과 감정에서 멀리 벗어난 이런 삶을 살기. 오직 생각으로만 감정을 느끼고, 오직 감정으로만 생각을 하면서.
태양 아래서 황금빛으로 머문다.
꽃으로 둘러싸인 검은 호수처럼.
그늘 속은 독특하고도 고결하니, 삶에서 더 이상의 소망은 없다. 세상의 소용돌이를 떠도는 꽃가루가 된다.
미지의 바람이 불어오면 오후의 대기 속으로 소리없이 날리고, 고요한 저녁빛 속 어느 우연한 장소로 내려앉는다.
더욱 위대한 사물들 사이에서 자신을 망각한다. 이 모두를 확실하게 인식하면서, 즐거워하지도 않고 슬퍼하지도 않는다.
햇살을 주는 태양에게 감사하고, 아득함을 가르쳐주는 별들에게 감사한다.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더 이상 소유하지 않고,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
.....
굶주린자의 음악, 눈먼 자의 노래, 우리가 알지 못하는 낯선 방랑자의 기억, 사막을 가는 낙타의 발자국, 그 어떤 짐도 목적지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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