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의 시각적, 조형적 요소보다 내용이나 주제를 중시하면 '보는 그림'이 아니라
'읽는 그림'이 된다. 어느 문명의 그림이든 '보는 요소' 못지않게 '읽는요소'도 중시
해왔다. 미술감상에서 보고 느끼는 훈련과 더불어 읽고 이해하는 훈련 또한
중시해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미술은 시각예술이라는 점에서 어느 경우에든지 '보는 요소'가 '읽는 요소'보다 우선적으로 다뤄질 수밖에 없다.
특히 서양미술의 경우 근대에 들어서면 전자가 후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중시된다.
심지어 후자를 백안시하거나 철저히 해체하려는 미술마저 등장한다.
대중은 아무래도 '보는 요소'가 강조된 그림을 친근하게 느끼게 마련이다.
복잡한 지식의 맥락에서 좀더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서양미술 감상을
19세기 미술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은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서양 미술사에서 그림을 주체적이고 주관적인 느낌의 소산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뚜렷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은 19세기에 들어와서이다.
개인의 자유와 주관을 중시한 낭만주의 회화가 그 테이프를 끊었는데,
낭만주의 화가들은 이전의 오랜 고전적 규범과 양식적 전통에 적극적으로
반기를 들고 자유롭고 주관적인 표현을 서슴지 않았다. 외부의 규범보다
내면의 욕구를 중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연히 낭만주의 이후 서양회화
에서는 개인의 주관과 개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매우 뚜렷해졌다.
이런 현상과 맞물려 역사적 사건이나 신화이야기, 종교적 주제를 다룬
그림이 19세기 후반 들어 급격히 사라지고 현실과 일상의 평범한 소재를
그리는 경향이 늘어난 것도 눈여겨 볼 만한 부분이다.
복잡한 '문학적, 서사적 주제'들을 떨쳐버리고 순수하게 조형적이고
시각적인 측면을 부각시켜 표현하는 미술작품이 급속히 늘어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서양 미술감상의 출발점으로 이 시기,
특히 19세기 후반의 그림만큼 좋은 것도 없다. 오랜 전통과 복잡한
이야기 구조에서 벗어난 데다 주관과 자유를 중시하는 미술인만큼
보는 사람이 부담없이 주체적으로 감상하도록 고무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인상파 화가중의 한 명인 클로드 모네(1840~1926)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는 늘 이론에 반감을 갖고 있다. .... 내 유일한 장점은
자연현장에서 작업하면서 가장 포착하기 힘든 자연의 인상과
그 인상에서 얻은 감동을 전달하려 애쓴다는 것뿐이다."
그는 또한 이런 말도 했다.
"쓸 것보다 그릴게 더 많은 사람이 화가이다."
뒤집어 얘기하면 그의 그림은 '읽을 것'보다 '볼 것'이
더 많은 그림이라 하겠다.
인상파의 그림은 이렇듯 감상자로 하여금 철저히 자신의
눈에 의지하게 함으로써 감상잘르 느낀의 주체로 세우는 힘이 강하다.
이 미술에서 출발해 위로 거슬러 올라가거나 아래로 흝어
내려가는 것 모두 감상공부의 시간을 절약해줄 것이다.
미술사 지식이 별로 없더라도 감상의 주체로서 자신에 차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감상을 통해 얻는 소득 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 미술감상이 자신감을 얻는 통로가 되어야지
자신감을 잃는 계기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어디서부터 시작하든 나에게 자신감을 주고 흥미를 느끼게 하는
미술 또는 작품이 곧 감상의 출발점이다.
늘 즐겁게 떠나 즐겁게 돌아오자.
<이주헌著 서양화 자신있게 보기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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