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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_ 皮千得

yeonpa(정지예) 2012. 9. 15.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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皮千得

 

 

“술도 못 먹으면서 무슨 재미로 사시오?” 하는 말을 가끔 듣는다. 그렇기도 하다.

 

술은 입으로 오고

사랑은 눈으로 오나니

그것이 우리가 늙어 죽기 전에

진리로 알 전부이다.

나는 입에다 잔을 대고

그대 바라보며 한숨짓노라.

 

에이츠는 이런 노래를 불렀고 바이론은 인생의 으뜸가는 것은 만취(滿醉)라고 하였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이백(李白)을 위시하여 술을 사랑하고 예찬하지 않은 영웅호걸, 시인, 묵객이 어디 있으리오. 나는 술을 먹지 못하나 술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여름날 철철 넘는 맥주잔을 바라다보면 한숨에 들여 마시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차라리 종교적 절제라면 나는 그 죄를 쉽사리 범하였을 것이요, 한때 미국에 있던 거와 같은 금주법(禁酒法)이 있다 하더라도 나는 벌금을 각오하고 사랑하는 술을 마셨을 것이다. 그러나 술을 못 먹는 것은 나의 선천적인 체질 때문이다.

 

나는 학생시절에 어떤 카페에서 포도주를 사본 일이 있다. 주문을 해놓고는 마실 용기가 나지 않아서 들여다보고만 있었다. 술값을 치르고 나오려니까 여급이 쫓아 나오면서, 왜 술을 안 마시고 그냥 가느냐고 물었다. 나는 할 말이 없어서 그 술의 빛깔을 보느라고 샀던 거라고 하였다. 여급은 아연한 듯이 나를 쳐다만 보았다. 그 후 그가 어떤 나의 친구에게 이상한 사람이 있더라고 내 이야기를 하더라는 말을 들었다.

술을 못 먹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우울할 때 슬픔을 남들과 같이 술잔에 담아 마시지도 못하고 친한 친구를 타향에서 만나도 술 한 잔 나누지 못하고 헤어지게 된다.

“피 선생이 한 잔 할 줄 알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소리를 들을 때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내가 술을 먹을 줄 안다면 더 많은 친구를 사귈 수 있었을 것이요, 탁 터놓고 네냐 내냐 할 친구도 있을 것이다. 나는 친한 친구 사이에도 깍듯이 예의를 지키고 농을 하지 못한다. 이것은 내가 술을 못 먹는 탓이다. 집에서도 내가 늘 맑은 정신을 갖고 있으므로 집사람은 늘 긴장해서 힘이 든다고 한다. 술 먹는 사람 같으면 술김에 아내의 말을 듣기도 하지만 나에게 무엇을 사달라고 해서 안 된다면 그뿐이다. 아내는 자기 딸은 술 못 먹는 사람에게는 절대 시집보내지 않는다고 한다. 아이들도 내가 다른 아버지들 같이 술이 취해서 집에 돌아오기를 바란다. 술이 취해서 돌아오면 무엇을 사다주기도 하고 어리광도 받아준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본래 소극적인 성질이라도 술에 취하면 평시에 품었던 잠재의식을 발산시키고, 아니 취했더라도 술잔 들면 취한 척하고 화풀이라도 할 텐데, 그리고 술기운을 빌려 그때나마 내가 잘났다고 생각하며 호탕하게 떠들어볼 텐데, “문 열어라.”하고 내 집 대문을 박차보지도 못한다. 가끔 주정 한바탕 하고 나면 주말 여행한 것 같이 기분이 전환될 텐데, 딱한 일이다.

술 못 먹는 탓으로 똑똑한 내가 사람대접을 못 받는 때가 있다. 술좌석에서 맨 먼저 한두 번 나에게 술을 권하다가는 좌중에 취기가 돌면 나의 존재를 무시해버리고 저희끼리만 주거니 받거니 떠들어댄다. 요행 인정 있는 사람이나 끼어 있다면 나에게 사이다나 코카콜라를 한 병 갖다 주라고 한다. 시외 같은 데 단체로 갈 때 준비하는 사람들은 술은 의례 많이 사도 다른 음료수는 전혀 준비하지 않는 수가 많다. 간 곳이 물이 없는 곳이면 목메는 것을 참고 밥을 자꾸 씹을 수밖에 없다.

술을 못 먹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도 큰 손해다. 회비제로 하는 연회라면 그 많은 술에 대하여 억울한 부담을 하게 된다. 공술이면 못 먹고 신세만 진다. 물론 남 술 마시는 사이에 안주를 자꾸 집어 먹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원래 식량(食量)도 적다. 각텔 파티에는 색색의 양주 이외에 레몬주스가 있어 좋다.

남이 권하는 술을 한사코 거절하며, 술잔이 내게 되돌아올까 봐 권하지도 않으므로 교제도 할 수 없고 아첨도 할 수 없다. 내가 술을 먹을 줄 안다면 무슨 사업을 해서 큰 돈을 잡았을지도 모른다.

 

술 때문에 천대를 받는 내가 융숭한 환영을 받는 때가 있다. 그것은 먹을 술이 적거나 한 사람에 한 병씩 배급이 돌아갈 때다. 일정 말엽에 더욱 그러하였다. 우리 집 아이들도 내가 술을 못 먹는 덕을 볼 때가 있다. 내가 술 못 먹는 줄 아는 제자들이 술 대신 과일이나 과자를 사다 주기 때문이다. 또 모르고 술을 사오는 손님이 있으면 그 술을 이웃 가게에 갖다 주고 초코레트와 바꿔 먹는 법이 있기 때문이다.

독신으로 지내는 내 친구 하나가 여성들에게 남달리 흥미를 갖는 거와 같이 나는 술에 대하여 유달리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 찹쌀막걸리는 물론, 거품을 풍기는 맥주, 빨간 포도주, 환희(歡喜) 소리를 내며 터지는 샴페인, 정식만찬 때 식사 전에 마시는 술, 이런 술들의 증류와 감정(鑑定) 방법을 모조리 알고 있다. 술에 관한 책을 사서 공부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술 자체뿐 아니라 술 먹는 분위기를 즐긴다. 비 오는 저녁나절의 선술집, 삼양(三羊)이나 대하(大河) 같은 고급 요정, 눈 내리는 밤 뒷골목 오뎅집, 젊은 학생들이 정치, 철학, 예술, 인생, 이런 것들에 대하여 만장의 기염을 토하는 카페. 이런 곳들을 좋아한다. 늙은이들이 새벽에 찾아가는 해장국집도 좋아한다.

지금 생각해도 아까운 것은 이십여 년 전 명월관에서 한 때 제일 유명했던 기생이 따라주던 술을 졸렬하게 안 먹은 것이요, 한 번 어떤 미국 친구가 자기 서재에서 비장하여 두었던 술병을 열쇠로 열고 꺼내어 권하는 것을 못 받아먹은 것이다. 내가 이 세상에서 지금까지 먹을 수 있는 술을 안 먹은 것, 앞으로 먹을 수 있는 것을 못 먹고 떠나는 그 분량은 참으로 막대한 것일 것이다. 이 많은 술을 내 대신 다른 사람이 먹는 것인지 또는 그만큼 생산을 아니 하게 되어 국가경제에 큰 도움이 되는지 궁금할 때가 많다.

솔직히 고백하면 나는 술에 대하여 완전한 동정(童貞)은 아니다. 내가 젊었을 때 어떤 여자가 나를 껴안고 내 입을 강제로 벌려 술을 퍼 부은 일이 있다. 그 결과 내 가슴에 불이 나서 의사의 왕진을 청하여 오게까지 되었다. 내가 술에 대하여 글을 쓰려면 주호(酒豪) 수주(樹州) 선생의 ‘명정(酩酊) 40년’보다 더 길게 쓸 수도 있지만 뉴먼 승정(僧正)이 그의 ‘신사론’에 말씀하시기를 신사는 자기 자신에 대하여 너무 많이 이야기하지 않는 법이라고 하셨기 때문에 더 안 쓰기로 한다.

 

나는 술과 인생을 한껏 마셔보지 못하고 그 빛깔이나 바라보고 기껏 남이 취한 것을 구경하느라고 살아왔다. 길 가는 여자의 황홀한 화장과 찬란한 옷을 구경할 뿐이다. 애써 벌어서 잠시나마 나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그들의 남자들에게 감사한다. 나는 밤새껏 춤도 춰보지 못했다. 연애에 취해보지도 못하고 사십여 년을 기다리기만 하였다. 그리고 남의 이야기를 써놓은 책들을 읽느라고 나의 일생의 대부분을 허비하였다. 남이 써놓은 책을 남에게 해석하는 것이 나의 직업이다. 남의 셋방살이를 하면서 고대광실을 소개하는 복덕방 영감 모양으로, 스물다섯에 죽은 키이츠의 ‘엔디미온’ 이야기를 하며, 그 키이츠의 죽음을 조상하는 셸리의 ‘애도나이스’ 같은 시를 강의하며, 술을 못 마시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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