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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시화 -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

yeonpa(정지예) 2012. 8. 9. 08:19

 

 

 

 

 

돌의 내부가 암흑이라고 믿는 사람은
돌을 부딪쳐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돌 속에 별이 갇혀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다
돌이 노래할 줄 모른다고 여기는 사람은
저물녘 강의 물살이 부르는 돌들의 노래를
들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 노래를 들으며 울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돌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아직 모르는 사람이다
돌이 차갑다고 말하는 사람은
돌에서 울음을 꺼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 냉정이 한때 불이었다는 것을 잊은 사람이다
돌이 무표정하다고 무시하는 사람은
돌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안으로 소용돌이치는 파문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 무표정의 모순어법을

 

-<돌 속의 별> 전문

 

[이 책에 담긴 시 한 편!]

 

오늘처럼 내 손이

오늘처럼 내 손이 싫었던 적이 없다
작별을 위해 손을 흔들어야만 했을 때
어떤 손 하나가 내 손을 들어 올려
허공에서 상처 입게 했다
한때는 우리 안의 불을
만지던 손을

나는 멀리서 내 손을 너의 손에
올려놓는다
너를 만나기 전에는 내 손을
어디에 둘지 몰랐었다
새의 날개인 양 너의 손을 잡았었다
손안 가득한 순결을
그리고 우리 혼을 가두었었다

그러나 오늘처럼 내 손이 싫었던 적이 없다
무심히 흔드는 그 손은 빈손이었다

 

 

모란의 연緣 / 류시화

 

어느 생에선가 내가

몇 번이나

당신 집 앞까지 갔다가 그냥 돌아선 것을

이 모란이 안다

겹겹의 꽃잎마다 머뭇거림이

머물러 있다

 

당신은 본 적 없겠지만

가끔 내 심장은 바닥에 떨어진

모란의 붉은 잎이다

돌 위에 흩어져서도 사흘은 더

눈이 아픈

 

우리 둘만이 아는 봄은

어디에 있는가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한 소란으로부터

멀리 있는

 

어느 생에선가 내가

당신으로 인해 스무 날하고도 몇 날

불탄 적이 있다는 것을

이 모란이 안다

불면의 불로 봄과 작별했다는 것을

 

 

 

梅雨(매우) / 류시화

 

지상에서의 삶은 어떤가요
매화는 피었나요 소복히

삼월의 마지막 눈도 내렸나요 지난번

나뭇가지에 찔린 상처는 아물었나요

그 꽃가지 꺾지 말아요

아무리 아름답기로

그 꽃은

눈꽃이니까

 

천상에서의 삶은 어떤가요
그곳에도 매화가 피었나요 촉촉이

초봄의 매우도 내렸나요 아니면

육체를 잃어서 슬픈가요

그 꽃가지 꺾지 말아요

아무리 신비하기로

환생의 꽃이니

 

 

梅雨(매우) :

매화(梅花)나무 열매가 익어서 떨어질 때에 지는 장마라는 뜻으로, 대략 "6월 중순(中旬)께부터 7월 상순께까지에 지는 장마" 를 일컫는 말

 

 

이 생에 있으면서도 전생에 있는 것 같았던
지난겨울에 대해 나는 아무 할 말이 없다
가끔 눈 녹아 길이 질었다는 것 외에는
젖은 흙에 거듭 발이 미끄러졌다는 것 외에는
너는 나에게 상처를 주지만 나는 너에게 꽃을 준다, 삶이여
나의 상처는 돌이지만 너의 상처는 꽃이기를, 사랑이여
삶이라는 것이 언제 정말 우리의 것이었던 적이 있는가
우리에게 얼굴을 만들어 주고
그 얼굴을 마모시키는 삶
(중략)
그리움이 다할 때까지 살지는 말자
그리움이 끝날 때까지 만나지는 말자
사람은 살아서 작별해야 한다
우리 나머지 생을 일단 접자
나중에 다시 펴는 한이 있더라도
이제는 벼랑에서 혼자 피었다
혼자 지는 꽃이다

 

-<이런 시를 쓴 걸 보니 누구를 그 무렵 사랑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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